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시대적 배경과 이해
강한 액션 장면이 압권인, 영화 '글래디에이터'입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액션 때문에 정작 영화 속에 숨어 있는 굵직굵직한 역사적 의미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3가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첫째, 로마 스포츠의 의미입니다. 이미 영화 '벤허'에서 보았듯, 전차 경기나 검투사 경기로 번역되는 글래디에이터 경기 등은 로마 최대의 스포츠였습니다. 둘째, 국가 최고 리더가 될 수 있는 조건입니다. 물론 국가 최고 리더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리더의 입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조건입니다. 셋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로마 멸망의 원인과 관련한 것입니다. 이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로마가 어떻게 멸망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선 이 영화의 제목인 글래디에이터(gladiator)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글래디에이터란, 양날 단검인 gladius를 가지고 싸우는 사람을 뜻하며, 발기한 남성의 성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 양날 단검은 로마 주력군이었던 보병들의 전투 방식인 접근전에 유리한 무기였습니다. 글래디에이터(검투사)는 주로 전쟁포로, 노예, 범죄자들로 구성되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특히 제정기에 들어와서는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하여 검투사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신분이 낮은 계층의 사람들은 검투사가 되어 성공하기 위해 스스로 검투사가 되는 경우도 다수 있었습니다.
콜로세움
이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이해하기 위해 그러한 스포츠가 벌어진 장소인 콜로세움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콜로세움은, 서기 72년에 로마 최초의 평민 출신 황제인 베스파시아누스가 건설하기 시작해 그 아들인 티투스가 80년에 완공한 것입니다. 즉, 폭군으로 기록된 전임 황제 네로는 시민들이 사용했던 공간에 자신만을 위한 황금 궁전과 거대한 콜로 수스(Colossus)상을 세웠었는데, 평민 출신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그곳을 시민들에게 다시 돌려준다는 의미에서 그곳에 일종의 '공설운동장'과 같은 경기장을 건설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로마에는 공화정 기부 터 크고 작은 경기장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공직에 오르고자 하는 유력자들에게는 유권자인 시민들에게 경기장에서의 오락을 제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유권자들로부터 환심을 사서 표를 얻고자 하는 것도 있었지만, 공직자가 시민들과 직접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긍정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했던 것입니다. 제정기에 들어와 황제들은 선거를 거치지는 않았지만, 경기에서 패한 검투사의 생사여탈권을 시민들의 반응에 따라 결정하였던 것에서 보듯, 황제들 역시 로마 건국의 주권자인 시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공화정 말기 로마 시민의 수는 무려 5백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황제는 자신의 통치가 인기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을 중요한 업무 중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재임기간 중 검투사 경기 5회, 체육대회 5회, 전차 경기 6회, 인간과 짐승의 결투, 짐승과 짐승 간의 결투 26회, 그리고 모의 해전 1회 등, 재위 기간 44년 중 첫해만 제외하고 총 43회의 경기를 개최함으로써 경기장 유권자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평민 출신이었던 베스파시아누스는 그 어떤 황제보다도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자 했습니다. 또한 그는 악명 높았던 전임 황제들인 칼리굴라, 네로 등으로 인해 시민들의 마음이 통치자 황제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고 그들이 소외감을 가지지 않도록 해야 했던 것입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민중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한 르네상스기 유명한 정치가였던 마키아벨리의 경구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 검투사 경기는 로마인들이 죽음 앞에 더욱 광분해질 정도로 매료되어 있었던 로마 최고의 스포츠였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스포츠에도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그 무엇, 예컨대 민족감정이나 고도의 정치적 목적 같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기도 합니다.
로마 스포츠의 의미
하지만 로마 스포츠에는 다음과 같은 더욱 분명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첫째, 로마에서 스포츠는 일종의 '축소판 전투'였습니다. 로마는, 대외팽창의 역사가 드러내 주듯이, 끊임없는 전쟁을 치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투의 대부분은 변경지역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었던 로마 시민들은, 전쟁의 치열함을 실감하지 못하는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로마의 지도자들은 시민들에게 전쟁의 치열함을 상기시킴으로써 시민들로부터 호응과 후원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둘째, 로마 스포츠에는, 모든 스포츠 경기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선거 운동'과 '여론조사' 의 성격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로마의 공직은 1년 임기로 시민들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었습니다. 특히 집정관과 같은 고위직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시민들에게 환심을 사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기 때문에 스스로 사비를 털어 검투사 경기나 전차 경기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일종의 유권자 대책으로서 경기를 개최하여 시민들에게서 표를 샀던 것입니다. 황제의 경우에는 그것이 자신의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습니다. 셋째, 오늘날의 스포츠도 그러합니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로마 스포츠에는 '빵과 서커스(빵과 구경거리)'라는 분명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로마의 풍자 시인인 유베날리스(Juvenalis)가 '빵과 구경거리만 제공해 주면 만족하는 시민들과 국가 정책'을 비판한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1981년 신군부가 집권하고 나서 '국풍 81'이라는 것을 만들어 국민들로 하여금 뜬금없는 그러한 축제에 빠지도록 했던 것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기에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화 정기이든 제정 기이든 로마의 지도자들은, 시민들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살기에 좋다'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욕구인 먹는 것과 노는 것, 즉 즐기는 것이 충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빵의 실체입니다. 로마는 시민들에게 이른바 소맥 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시행합니다. 이 소맥 법은 지도자에 따라 그 혜택의 범위와 내용이 다소 변화했지만 수도 로마에 살고 있는 남자 시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유권자들이겠죠. 소맥 법에 입각한 혜택의 내용을 보면 로마가 천년 이상의 국가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소맥 법에 따르면, 혜택을 받는 시민에게는 30일 치가 아닌 약 20일 치의 식량이 주어졌고 그것도 빵을 만들어서 준 것이 아니라, 재료가 되는 통밀을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바로 이는,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사회보장은 해주지만 그들로 하여금 노동의 중요성을 알도록 했던 로마 지도자들의 현명한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과연 우리가 어떤 사회보장을 해야 하는가? 이 또한 로마의 역사를 통해서 타산지석을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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