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래디에이터로 보는 로마 멸망의 원인 - 공화주의 전통의 파괴
로마인들은 전통적으로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되는 것을 죽기보다 더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일찍이 왕정을 버리고 공화정(共和政)을 선택했습니다. '공화정'이라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의미가 있겠지만 그 핵심은, 사적인 것보다 공적인 것을 앞세우고, 누구나 인정하고 당연히 될 만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정치체제를 의미합니다. 로마의 이러한 공화 정신은 제정기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공화정 때는 시민들이 스스로 지도자를 선택했지만, 제정기에는 혈통, 즉 피에 의해, 혹은 양자제도에 의해 황제가 탄생했습니다. 제정기 황제들의 대부분은, 비록 자신들의 자리가 시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된 것이 아니었지만 황제에게 요구되는 지도자로서의 다음과 같은 조건에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지도자로서 조건
그 첫 번째 조건은 실력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황제는 국가와 시민을 적으로부터 지키는 국가안보와 시민들을 굶지 않게 하는 식량안보에서 실력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이는 로마의 황제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모든 지도자들에게도 요구되는 필수조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 번째 조건은 정통성입니다. 공화정 때의 정통성은 유권자들의 선거를 통해 확보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정기에는 그것이 혈통(피)으로 상징되었습니다. 이 조건은 실력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존재하는 조건입니다. 로마는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양자제도를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황제의 피가 섞인 친아들이 있을 경우에는 이러한 양자의 정통성은 다소 무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이사르를 비롯하여 이른바 로마의 평화시대, Pax-Romana 시대를 이끌던 5 현제 중 4 현제인 네르바, 트라야 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는 친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첫 번째 조건인 실력으로 인재를 뽑았고 그 선택된 이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양자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5 현제의 마지막 황제, 즉 영화의 주인공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는 코모두스라는 친아들이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아들 코모두스가 황제직을 탐하면서 공화 정신을 가지고 있는 막시무스라는 장군에게 황제직이 넘겨질 것을 간파하고 아버지를 살해합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릅니다. 아마도 코모두스를 더욱 철저한 악당으로 만들기 위한 감독과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만든 사람들의 조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이러합니다. 마르쿠스는 분명 아들 코모두스가 황제가 되기에 함량 미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쿠스는 죽기 3년 전에 15세에 불과한 아들을 공동 황제로 임명하고 서기 180년 죽음에 이르러 여러 장군들과 원로원 의원들 앞에서 “코모두스를 도와 제국의 안전을 유지하고 내란을 막아 달라 “고 유언했습니다. 그토록 현명한 철인(스토아 철학자) 황제였던 마르쿠스가 로마의 정통, 즉 실력 있는 자를 선택하는 것을 무시하고 함량 미달의 아들에게 황제직을 계승하도록 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마르쿠스는, 아들이 실력은 부족했지만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고, 실력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만약 실력만 강조한다면 내란이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이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영화의 주제인 로마 멸망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유명한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불후의 명작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로마 제국이 무너지기 시작한 시점을 2세기 말, 그러니까 코모두스가 황제가 되는 180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번은, 로마인이 만든 훌륭한 건축물(국가 로마)을 떠받치고 있는 각 부분의 기둥이 흔들리면서 로마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는데 그 시작이 코모두스였습니다. 기번이 언급한 로마의 흔들린 기둥 중 가장 핵심적인 기둥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이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길입니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건국 이후 왕정, 공화정을 거쳐 제정기 약 200여 년 동안 면면히 유지되어 온 로마의 역사와 전통인 공화 정신의 와해였습니다. 애당초 함량 미달이었던 코모두스는, 182년 누이 루실라의 암살 음모 이후 의심의 포로가 되어 최소한의 견제장치인 원로원을 파괴하고, 소수의 아첨하는 친위 세력들과 더불어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공화 정신이 와해되는 현상입니다. 그는 스스로 헤라클레스의 환생이라 여겼으며 영화에서와 같이 실제로 검투사 경기를 즐기면서 국정을 돌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로마는 권력과 돈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질되어 갔던 것입니다. 어느 나라든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동서고금의 역사에 보면, 성공한 위대한 리더들이 있는가 하면, 실패한 끔찍한 리더들도 있습니다. 로마에도 티베리우스, 도미티아누스, 네로,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칼리굴라 등 실패한 리더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2년 동안에 걸쳐 로마의 전통, 즉 공화주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통치를 한 코모두스는, 가장 실패한, 가장 끔찍한 리더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꼭 언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화 첫머리에서 주인공 막시무스가 다 여문 밀밭을 거니는 첫 장면입니다. 여기에는 로마인의 주식이 밀이고 국가 리더는 식량안보를 위해 밀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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