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르타쿠스'의 역사적 배경
고대 로마에 대한 공부를 통해서 우리 공부하는 이 영화에 대해서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근대 역사계 아버지 레오폴트 폰 랑케라는 사람은요. 모든 고대사는 로마라는 하나의 호수로 흘러들어왔고 모든 근대사는 또다시 그 호수로부터 흘러나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로마는, 로마에 대한 이해는요. 인류에 대한 고대, 중세, 근대사를 이해하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약 1200년 동안 계속된 로마의 역사에서 로마를 이해하는데 대단히 필수적인 요소인 로마의 노예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자 합니다. 그중에서도 기원선 73년에, 73년부터 71년에 이르기까지 로마 사회를 뒤흔들었던 검투사, 바로 글래디에이터죠. 그런 스파르타쿠스가 일으킨 반란에 대한 시대적 배경 또 역사적 메커니즘을 여러분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우선요. 이 영화 스파르타쿠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로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로마는요 기원선 12세기경에 트로이 전쟁에 유민들과 연관이 있습니다. 유민들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은 라틴족이었는데, 그들은 주로 청년기 남자들로만 도망을 치게 됩니다. 도망을 쳐서 사막을 지나 바다를 건너 어디까지 오게 되냐면요. 오늘날 이탈리아 반도에 있는 로마에까지 자리 잡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라틴족들은 이탈리아 반도 원주민들인 사비니족 또 에트루리아족, 삼니움족의 여성들과 결혼을 하면서 점차 국가의 형태를 띠게 됩니다.
로마의 대외 정책
로마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요인 중에 하나는요, 바로 로마의 대외 정책에 관한 이해입니다. 그것은 역사가 플루타르크스가 말한 적까지 동화시키는 로마인의 개방정책이었습니다. 로마는 인종, 민족, 사상 등에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나누어주는 관용정책을 실시하였던 것입니다. 기원전 753년에요. 건국한 로마는 왕정 하에서 7명만 단지 7명만 왕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7명 중에 첫 번째 왕만 라틴족으로 하고 나머지 이후에는 부족들 간에 돌아가면서 왕을 하게 되는 거죠. 자 이 사실에서요. 로마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핵심 내용이 나옵니다. 바로 공화주의라는 것입니다. 공화에 대한 개념입니다. 기원전 509년에 로마는요 공화정을 수립합니다. 왕정을 버리고 공화정을 수립하는데, 공화는 개인이나 유력자가 권력과 돈이 있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공화의 본질은 사익보다 공익에 우선순위를 두고 해야 될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은 당연히 하지 않는 것이죠. 그러한 사람들이 국가를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이 공화의 핵심입니다. 공화정 초기 킨키 나투스라는 사람은요. 공화 정신의 핵심을 보여주는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쟁기 대신 칼을 들고 적을 물리친 후 다시 보장된 독재정치 관직을 버리고 쟁기를 잡은 인물입니다. 이러한 내부적 강점을 바탕으로 로마는 대외팽창을 거듭하게 됩니다. 기원전 272년에요. 브린디시, 바로 이탈리아 반도에 있는 그런 곳이죠. 마지막으로 반도를 통일하게 됩니다. 반도를 통일할 때까지만 하더라고 철저한 육군 중심의 나라였습니다. 주력군인 자영농민들은 바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죠. 심지어 로마 정부 역시 배는 물론 해군도 전무했습니다. 기원전 348년경에는요. 카르타고와 맺은 불평등 조약으로 로마는 카르타고 허락 없이 바다에서 손도 씻을 수 없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런 로마가 반도를 통일하게 되자 지중해의 사실상의 주인공이었던 카르타고는요, 이미 모국은 망하고 없는 패니키 아인들이 만든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을 Punic War라고 했는데 포에니라고 발음이 되는 거죠. 포에니 전쟁입니다. 이 페니키아 인들이 세운 나라 카르타고는요. 로마가 바다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 초조해진 나머지 로마와 아프리카 반도를 연결하는 중간에 있는 섬 바로 시칠리아, 현재 시실리 섬이죠. 시실리 섬에 대한 모든 지배권을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만약 이 섬이 카르타고의 수중에 넘어간다면 반도의 안정을 확보할 수가 없었죠. 심지어 당시 로마에 주식은 밀이었는데 시실리 섬은 바로 밀이 생산되는 보고(寶庫)였습니다. 또한 시실리 섬은요. 바로 방금 이야기했듯이 로마인들의 주식이 밀이었는데 곡창지대로 유명했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그 섬이 카르타고에 넘어가면 안 되는 거죠. 따라서 로마는 당시 그 지역의 국가였던 메시나의 구원 요청과 식량안보에 대한 절실함 때문에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포에니 전쟁은 약 130년 동안에 걸쳐서 3차례에 일어납니다. 1차 전쟁은 아까 이야기했던 시실리 섬 쟁탈전이었습니다. 초기에는 해군이 없었던 로마가 패하게 되죠. 그러나 그 로마는 바로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던 알렉산더의 그러한 리더십 중에 Think different, 다르게 생각하는 사고를 가졌던 거죠. 바로 뭐냐면요. 그 로마가 만들 아주 허술한 배를 서로 연결하는 그러한 기술, 바로 까마귀 부리(코르부스)와 같은 그런 신무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적군의 함대를 끌어당겨서 마치 육지와 같이 만들고 육군들이 그 배에 진출해서 승리를 하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승리를 하게 되고 바로 많은 노예들을 로마로 데려오게 됩니다.
2차, 3차 포에니 전쟁
2차 포에니 전쟁은 바로 로마가 먼저 공격하지 않습니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라는 장군이요. 시실리 섬을 넘은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북부를 지나서요. 스페인의 마드리드 해협을 건넙니다. 그리고 알프스까지 진군해 옵니다. 그리고 로마로 진군해 들어오게 되죠. 거침없이 내려옵니다. 당시 한니발의 병력은 로마군에 비해서 절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한니발은 철저하게 자기의 정신적 스승인 알렉산더를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죠. 즉, '작은 것도 승리할 수 있다. 적은 것이 승리할 수 있다.'라는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고 로마와 전투를 하게 됩니다. 그 유명한 칸나에 전투에서 그때까지 로마인들이 전투와 전쟁을 통해서 쌓아왔던 상식을 깨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많은 수가, 다수가 승리하고 기병대가 승리할 것이라는 이러한 상식을 한니발이 깨게 됩니다. 한니발의 2차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는 완전히 초토화되는 그러한 상태가 됩니다. 래서 2차 전쟁은 한니발에 의해서 아주 초토화됐지만은 그러나 한니발의 그러한 정신을 배운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라는 장군이 한니발의 전법을 그대로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한니발과 직접 공격하지 않고 아프리카를 건너와서 카르타고를 직접 공격하게 되죠. 그러한 전투를 통해서 2차 전쟁도 로마가 승리를 하게 됩니다. 3차 카르타고 포에니 전쟁은요. 이제 그 로마가 자신들을 괴롭힌 카르타고를 그냥 놔둘 수 없는 것입니다. 초토화 전쟁을 펼치게 되는데 스키피오가 자마 전투를 통해서 카르타고를 완전히 멸망시키게 됩니다. 당시 위대한 원로원 중에 한 사람이었던 카토라는 사람은 바로 '카르타고는 당연히 멸망되어야 된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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